지난주 목, 금은 회사 워크숍이었다. 내가 첫 직장을 다닐 때면 늘 같은 현상이 반복되곤 하는데, 이상하게 워크숍이 정해지면 그 전날까지 미친 듯이 바빴다. 워크숍을 다녀오면 밀린 일만큼 또 바쁘고. 꼭 내가 참여한 프로젝트나 부서는 워크숍 전후로 엄청 바빴었다. 이 전통 있는 징크스는 사라지지 않고 올해도 발생했다.
워크숍 주 월요일에 회사의 중요한 테스트 프로젝트가 마감이었다. 그런데 주말 간 돌발 상황이 연달아 발생했고, 결국 월요일 마감을 넘겨 화요일 오전에서야 끝났다. 그것도 완성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의 처참한 퀄리티로. 어찌 보면 예견된 미래일 수도 있다. 프로젝트 리딩을 하는 디렉터는 아예 없었고, 매니저는 전담하는 것이 아닌 세 명이 나눠서 진행하는 것이었다. 그중 하나는 나였는데, 처음엔 사이드에서 서포트를 하는 역할이었는데 어느새 거래처와 연락 담당까지 하고 있었다. 다들 바쁘니 그 정도는 얼마든지 해줄 수 있었다. 문제는 메인 제작을 하는 팀과 팀장이 완전 신입이었는데 리딩할 디렉터가 없다는 것이었다. 결국 모든 단계에서 시간을 넘겼고, 파일 삭제 등의 사고까지 겹쳐 2, 3일분의 시간이 날아가는 사태까지 왔었다.
월요일 혹시 몰라 일찍 출근 했는데, 출근하자마자 대표는 나와 다른 팀장을 부른다. 요점은 이 지경이 올 때까지 무엇을 했냐는 것이다. 대표는 신입들이 원 없이 일할 수 있도록 선배인 우리가 잘 보듬어주고 이끌어가길 바랐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 습성이라는 것이, 특히 월급쟁이는 그런 상황에서 자신이 리더가 될 테니 하자고 나서지 않는다. 그리고 실제로 작업을 담당하는 팀원들을 장악하고 있는 것은 신입 팀장이다. 그런데 우리가 어떻게 작업까지 관여를 할 수 있을까. 세심하게 체크하여 상황을 점검하지 못한 내 잘못을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에게만 뭘 했냐면서 화를 내고, 신입 팀장에겐 웃으며 이야기하는 태도의 차이가 가증스러웠다. 대표는 감정적인 사람이지만 이유 없이 움직이지 않는 사람이다. 이런 태도도 분명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자신만의 합리적인 이유이고, 작년부터 계속 이런 상황을 겪은 나는 '내가 욕받이인가.'라는 생각이 들면서 무척 기분이 나빴다. 처음 한 번은 최대한 그러려니 하고 넘겼는데, 오후에 터진 두 번째 상황은 넘기기 힘들었다. 공황장애 초기 증상이 또 오길래 어서 나가 심호흡을 하며 잠깐 쉬었다. 그러던 중에 실제 작업을 하는 사람들이 알만한 것들을 나에게 물어보며 왜 공유가 안되고 모르냐고 한다던가 식의 짜증들을 간간히 들어야 했다.
개인적으로 워크샵에서 가장 우려하던 상황은 후배와 C의 술버릇인 스킨십을 또 보는 것이거나, 후배가 나에게 우리 사이에 있던 일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만약 둘이 또 술에 취해 스킨십을 하면 소리 지르면서 망신을 주려고 생각했었다. 뭐가 되었든 엮이기 싫어서 일부러 술 마시는 사람들의 테이블에서 최대한 떨어져 앉았다. 친하지도 않은 신입 팀원들은 꽤나 어색해서 힘들어했을 것이다.
어째 저째 시간이 흐르고, 술 더 마실 사람들만 숙소 방에 가서 마시자고 하여 자리를 정리했다. 그러던 중 후배가 라면을 먹겠다며 혼자 나가니까 대표가 나에게 가서 도와주라고 하더라. 누구 대신 보낼 사람도 없어 어쩔 수 없이 따라갔다. 술이 좀 취한 건지, 아니면 일부러 나의 반응을 보려고 하는 건지 술 마시기 전에 라면물을 받아봤을 텐데 나에게 정수기가 어딨는지 물었다. 나는 말없이 손가락으로 방향을 알려주고 준비가 다 될 때까지 좀 떨어진 의자에 앉았다. 그러자 후배가 내가 자신을 대하는 태도에 너무 괴롭다고 운을 띄었다. 전과 달라진 내 태도에 자신이 너무 힘들다고. 난 분명 둘의 관계를 정리하자고 이야기한 게 3번인데 2개월이 지난 이제야 이야기를 꺼내니 화가 너무 났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분명 대표가 둘이 어디 갔냐고 찾을 텐데, 그래도 이야기하고 싶냐는 질문에 후배가 그러고 싶다고 하여 이야기를 시작했다. 조금 이야기가 진행될 때 결국의 호출에 C가 우리를 부르러 왔다. 이야기 중에 울음이 터진 후배에게 '내가 분명 말하지 않았냐. 우리 찾을 거라고. 울던 거 티 안 나게 알아서 그치고 들어오고, 네가 이야기 꺼낸 거라 마지막으로 기회 주니까 더 이야기하기 위해 시간 될 때 장소 상관없으니까 꼭 부르라고.'라고 말한 뒤 먼저 방에 들어갔다.
대표님과 한, 두잔 정도 마셨을 때 후배가 들어왔다. 잠든 엄마(상무)를 깨우고 방으로 돌아갔다. C는 잠시 앞 방에 간다더니 꽤나 돌아오지 않았다. 이미 술을 어느 정도 마신상태라 대표는 내일 일정을 위해 정리하자고 했다.
뒷정리를 열심히 하고 나니 아까 후배와의 대화가 떠올라 머리가 복잡해졌다. 이제 조금씩, 아주 조금씩 가라앉고 있었는데 왜 다시 휘저어 놔서 나를 더 깊은 지옥으로 떨어뜨리는 걸까. 숙소 근처에 야경이 예쁜 공원이 있다고 하여 강바람이나 쐬러 나왔더니 후배와 C가 밴치에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후배는 울면서 나와의 대화를 C에게 말하고 있고, C는 들어주고 있는 듯하였다. 바로 옆을 지나가는 나를 둘은 봤는지 안 봤는지 모르겠지만, 후배에게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저렇게 이야기할 시간이 있으면 이야기가 끊긴 나를 부르는 게 맞지 않나? 한껏 더 화가 난 상태에서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친구에게 하소연을 해도, 예쁜 야경의 공원 조경과 강을 봐도 전혀 누그러지지 않았다. 차라리 술이라도 만취했으면 지쳐 잘 텐데... 그렇게 1시간 넘게 서성이다가 숙소에 들어와 3시 넘게 잤다.
계속 뒤척이다가 6시 반에 러닝복으로 갈아 입고 나왔다. 계속 잠도 못 자고, 마음이 안정적이지도 못하면 차라리 몸이라도 혹사시키고 싶었다. 조정경기가 있는 날이라 선수, 코치, 취재진들이 이른 시간에 연습과 준비를 하고 있었다. 비교적 온도가 낮고 바람이 불어왔지만 뜨거운 햇살은 몸의 열을 끌어올리고 있었고, 색다른 풍경들은 그래도 잠깐이나마 잡생각을 줄여주었다.
2일째 일정 출발을 위해 집합시간이 되었는데 신입팀원들이 지각을 했다. 대표는 허허 웃으며 그럴 수도 있다고 한다. 내가 심보가 꼬인건지, 만약 나나 다른 사람이 늦었으면 화를 냈을 거라는 생각이 문뜩 들었다.
그리고 일정 내내 사소하게 안좋은 일들이 생기고, 후배의 얼굴을 마주칠 때마가 감정기복이 무척 심했다. 스트레스 정도가 땡볕 더위에 계속 러닝을 할 때 느낌이었다.
워크숍에서 돌아오고, 친구가 나를 위로해 주기 위해 자기 작업실로 불렀다. 나도 일할 것들을 챙겨 준비하면서 대표 페이스북을 봤는데, 월요일에 있었던 일에 대해 우리에 대해 수동적이고 무능력하다는 식으로 표현을 했고, 정작 사고를 친 팀은 열정 대단한 친구들이라고 썼다.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우리가 노력을 안 한 것도 아니고, 저들은 두둔하며 우리에게만 뭐라고 하는 모습이 정말 이해되지 않았다.
나의 단점을, 사회생활 인내력을 기르기 위해 다시 복귀 했는데, 복귀 첫날부터 오늘까지 계속 이런 일들이 반복되면 내가 정신병과 공황장애를 감수하면서까지 다녀야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 그만 두면 정당한 휴식을 위함일까, 그냥 도피일까. 모르겠다.
그냥 어떻게든 사고가 나서 내가 죽어버리면 좋겠다. 이렇게 살아간다고 진짜 좋은 날이 올까? 근데 우습게도, 죽을 용기는 없다. 그래서 매일매일 비루하게 연명하는 게 지금의 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