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 종료 이후 크고 작은 변화가 있었다. 회사는 이어지는 일이 없어서 긴축경영에 들어갔고, 나를 포함한 2명의 직원을 제외하고 다른 사람들은 무급휴가를 주었다.
한 달 벌어 한 달 사는 직장인들에게 무급휴가는 큰 타격이기 때문에, 어떻게든 회사를 다니는 게 좋다는 입장에서는 나는 운이 좋다고 볼 수 있다(월급이 밀렸지만). 하지만 나는 지난 프로젝트로 너무 지쳐 있었기 때문에 회사를 그만두고 14년간 몸 담은 이 업계를 떠나려고 했었다. 심각한 경제위기, 취업난에 어쩔 수 없이 좀 더 다니기로 했지만 숨만 겨우 쉬고 있을 뿐, 쉽사리 마음이 진정되지 않는다. 스위치를 누르듯이 사람 마음도 칼같이 확확 바뀌면 얼마나 좋을까. 가끔은 마음이 없는 로봇으로 살아가는 것이 훨씬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얼마 전 지인들의 추천으로 퍼펙트 데이즈라는 영화를 봤다. 초중반부까지의 주인공의 삶은 회사를 그만두고 내가 살고자 하는 삶이었다. 정해진 시간과 루틴이 있는 일, 반복되지만 그 안에서 소소한 자신만의 행복한 취미, 상처를 주고받을 수 없는 단절된 인간관계. 어떻게 보면 구도자의 삶일 수도, 불행한 삶일 수도 있다.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며 불안해하고, 자는 시간 외에는 매일매일 일만 하는 삶. 위든 아래든 모든 사람들의 필요와 구박을 듣는 삶. 잘하면 본전이고 못하면 욕먹는 삶.
동료들과 술잔을 기울이며 한 때나마 스트레스를 풀지만, 내 탓 혹은 남 탓으로 인해 동료들에게 피해를 주는 삶.
나라고는 없는, 나를 죽이는 삶.
그런 삶을 살바에는 비루해보여도 혼자 소소하게 살 수 있는 삶이 더 행복할 것 같다.
하지만 그 삶이 이루어지려면, 마음 가짐이 달라져야 할 것이다. 고독을 즐길 수 있으며, 외로움을 느끼지 않아야 하고, 모든 것에 감사함을 느끼는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이다. 과연 내가 그러한 마음을 가질 수 있을까.
회사에 출근하는 날이 되면, 마음이 너무 괴롭다. 출근이 안 힘든 직장인이 어딨겠냐만은, 그걸 뛰어넘은 괴로움이다. 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서 몸은 회사에 있지만 마음은 어딘가로 떠나 있다. 회사의 미래를 위해 같이 고민하길 원하는 대표님의 바람과는 다르게 나는 그저 붕 떠 있을 뿐. 매일 분노, 후회, 다짐을 반복한다.
불혹이 가까운 나이에, 뜻하지 않게 짝사랑을 하게 되었다. 이어져야 하는 이유보다 이어지면 안되는 이유가 더 많다. 무엇보다 상대방이 나를 이성으로 볼 여지가 없다. 빨리 마음을 접어야 하는 짝사랑이다. 열심히 마음을 잘 죽이고 있었지만 저번달부터 갑자기 넘쳐나는 마음을 제어하기 힘들다. 나이답지 않은 이 마음에 매일 끌려다닌다.
이렇게 자신의 마음과 기분을 제어하지 못하는데 영화 속 삶처럼 살 수 있을까. 남들도 매일 이렇게 스스로 싸우면서 살아가는 걸까. 나의 고민들이 너무 유치한 걸까. 감정이 없는 삶이 더 행복하지 않을까.
언제까지 답을 알 수 없는 고민을 하며 살아야 모든 것에 초연해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