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및 복귀보다 나를 더 힘들게 한 일이 있었다. 이런 문제에 있어서 미성숙하고 어리숙한 내 모습이 부끄럽고, 실수가 후회되지만 이렇게 익명의 공간에 표출해서라도 응어리를 조금이나마 풀고자 한다.
나는 회사에서 같이 일하는 내 후배를 짝사랑했다. 작년 가을부터 호감이 연심으로 점점 커졌었다. 하지만 이 앞으로 나가기 굉장히 어려웠다. 첫째로 난 절대 사내연애는 반대한다. 내 주변에 사내연애로 시작해서 결혼까지 골인한 커플들이 있지만, 그렇게 잘 되지 않은 경우 껄끄러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애초에 후배는 나를 이성보단 편한 친구로 생각하는 게 분명해보였다. 둘째로 후배와 어제 일기에 언급한 C직원까지 셋은 친한 술친구였다. 주말에 따로 등산도 갈만큼 사적으로 나름 친한 관계였다. 그렇기 때문에 이 관계를 깨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고백할 옮길 생각은 없었다.
그러다 올해 초부터 사적인 연락을 매일 주고 받으며 제법 친해졌다. 서로 사적인 고민까지도 공유하며 연락을 할 정도로 친해졌을 때도 이 후배가 나를 좋아한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오히려 친구로써 더 가까워진 것이라는 느낌이 강했다. 대화 내용들을 이성보다는 친구에게 이야기할 법한 내용들이 훨씬 많았으니까. 그래서 여전히 고백할 생각이 없었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커져가는 마음을 어떻게 감당해야할지 걱정이 되었다. 그리고 그만큼 이 사람의 존재가 나에게 커져가는 것을 느꼈다. 여러가지 고민들을 친구들에게도 상담했지만 부분적인 상담이었고, 내 주변에 가장 많이 나의 고민을 말한 사람은 후배가 유일했다. 그리고 업무연락도 섞였지만, 점점 늘어나는 사적인 연락 탓에 근 몇달간 제일 연락을 많이 하는 사람도 후배였다. 이 정도로 빠져들었던 이유중에는 몇몇 취향이 겹치는 것들도 있다는 것도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음악이었다. 그러다가 5월 초에 열리는 과천 재즈피크닉을 같이 가기로 했다. 예전에 후배의 제안으로 둘이서 인왕산을 가기로 했는데, 당일 아침 후배의 사정으로 갑작스럽게 취소된 아쉬운 일도 있어서 더더욱 기대가 되었다.
그러던 중 어제 일기에 쓴 것처럼 나의 실수로 인해 후배의 복귀가 결정되었고, 나는 퇴사 준비를, 후배는 인수인계 준비를 하며 매일 같이 근무를 했다. 고맙게도 후배는 나의 상황을 공감하여 위로해줬었다.둘 다 술도 좋아하여 저녁식사 시간엔 반주도 하며 일에 대한 불만들을 토로하기도 하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 시간들이 유일하게 즐겁게 쉴 수 있는 시간들이었다.
나름 부족한 시간을 쪼개어 일과 인수인계를 하였지만, 절대적으로 시간이 부족했다. 압축적인 인수인계를 위해 후배는 빠른 속도로 관리 업무를 대체하기 시작했지만 하루가 갈수록 피곤해하고 힘들어했다. 결국 열심히 했지만 인수인계 준비를 다 하지도 못했고, 마지막으로 참여한 일의 마감일도 내 퇴사일 2일 후로 정해졌다. 후배는 처음으로 업무 마감을 진행했어야 했는데, 그에 대한 불안함을 이야기 했었다. 이를 보조하기 위해 재택근무 중인 C직원에게 출근을 요청하였지만, 이번 업무의 메인 전력인 C직원은 이미 아침부터 새벽까지 매일 일하느라 지쳐있었다. 내가 없다면 회사에서 대안을 구했겠지만, 친구인 이 둘을 위해 도움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자발적으로 2일 더 회사에서 숙식하며 일을 했다. 바보같이 무급으로.(이에 대해선 아직도 대표에게 감사 인사를 받지 못했다.)
그렇게 겨우겨우 마감을 끝낸 금요일. 나는 내 짐을 정리하며 차로 옮겼다. 그간 바쁜 일에 집중하며 외면했던 퇴사에 대한 감정들이 다시 쏟아졌다. 겨우 아무렇지 않은 척 정리하고 잠깐 한숨을 돌리면서 후배와 카톡을 했다. 많이 힘든거 같은데 내일 재즈 피크닉 행사를 갈 수 있는지 물었고, 후배는 가기로 한 거니까 가겠다고 했다. 정말 지쳐보이는 후배가 걱정되어 재차 묻자, 후배는 사실 일요일에 제사가 있어서 시골에 가야한다고 했다. 후배네 가족은 시골이 멀어서 움직이면 이른 아침에 출발한다. 즉, 후배는 피곤한 상태에서 토요일 행사를 가고, 그리고 못 쉰 상태로 일요일 시골로 가야하는 것이다. 5월 초라 화요일까지 연휴라고 하지만, 많이 힘들어하는 후배를 보며 이기심을 부릴 수 없었다. 결국 내 제안으로 재즈 피크닉을 가는 것을 취소했다. 하지만 나는 이 행사를 후배와 같이 가는 것이 힘든 시간 속 유일한 희망이자 버팀목이었다. 내가 가서 뭔 특별한 이벤트를 하거나 뭘 하진 않을거지만, 여유로운 시간, 좋아하는 사람과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유유자적하게 시간을 보내는 것. 그 것만으로도 너무 좋았고 기대되었다. 수많은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들에 휩싸여도 이 약속만 간다면 다 괜찮을 것 같았다. 그런데 그것도 못 가게 되었다. 나에게 허락된 것은 아무 것도 없는 것 같았고, 모든 불운이 나에게 따라 붙는 것 같았다. 그리고 지난 인왕산 약속 건도 그렇고 이 후배와 둘이서 만나려고 하면 계속 방해가 생기는 것 같았다. 여기까지 오니 모든 것이 무너지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나는 집에 가겠다고 인사를 했는데, 후배는 짐을 정리하는 내가 안쓰럽기도 하고, 취소된 약속이 신경 쓰였는지 자기랑 같이 저녁먹고 가자고 했다. 나는 거절했지만 자기도 배고프다고, 저녁먹고 가라고 다시 권유했다. 지금 기분에 표정관리가 될 것 같지 않아 거절하려다가, 어떻게 보면 좋아하는 사람과 다시 둘만의 시간을 보내려면 언제 기회가 올지 모른다는 생각에 후배와 같이 식당으로 갔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 때라도 거절하고 집으로 갔어야 했다.
후배의 권유로 감자탕집을 갔다. 가는 길에도, 가서도 내성적인 후배가 애써 말을 하며 분위기를 이끄는 것처럼 느껴졌었다. 후배는 소주를 시켰고, 나는 운전을 해야해서 소주잔에 물을 따르며 같이 마셔줬었다. 반병정도 비웠을 때 후배가 그냥 오늘 자기랑 3차까지 마시면 안되냐고 했다. 마감을 끝낸 후련함을 같이 즐기고 싶었나보다. 기분이 너무 안좋아서 술을 마시고 싶었던 나는 알겠다고 하고 같이 마시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술을 마시면 안되었는데... 기분에 잡아먹힌 나는 과음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1차를 마무리하고 둘이 좋아하는 술집으로 2차를 갔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2차부터 기억이 드문드문 난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꾹꾹 참고 있던 아쉬움을 토로했다. 나는 정말 내일 약속을 기대해서 이것저것 알아보고 준비했는데, 둘이 기대의 온도차가 큰 것 같다고. 사실 내가 먼저 취소를 권유했지만, 제사 이야기는 알지 못했던 내용이기 때문에 아쉬움이 컸던 것 같았다. 후배로 엄청 기대했었다고 대답하며, 또 이런저런 대화를 이어나갔다. C직원과 셋이 같이 있는 단톡방에서도 농담을 주고 받으면서 잘 있다가 무슨 대화를 했는지 모르겠는데, 후배가 '자신에게 할 말 없냐'는 이야기를 했다. 나는 거기에 좋아한다라는 답변을 했다. 후배가 다른 의도가 있었던 것이 아닌 것도 아는데 술취한 나는 대체 왜 그 말에 제일 최악의, 병신같은 대답을 했을까. 그냥 내 모든 게 다 끝난 것 같아서 자포자기 심정이었을까. 다시 곱씹어봐도 모르겠다. 그렇게 3차까지 가서 계속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정말 미안하고 고맙게도 후배는 내 술주정을 묵묵히 들어줬던 것 같다.
그러다 술집이 폐점할 시간이 되었고, 다행히 지하철 첫차 시간이 되었다. 밖에 나오니 날이 제법 쌀쌀했고, 후배는 추워했었다. 그렇게 술이 취했는데도 딱 2가지 생각이 들었다. 하나는 'X됐다.'. 또 다른 하나는 '내 자켓을 벗어서 입혀보내야겠다. 돌려 받을 구실로 만나서 어떻게든 상황을 수습해야겠다.'였다. 그렇게 자켓을 입혀서 배웅해주고 모텔로 돌아가는 길과, 일어나서 그 날 저녁까지 약간은 장난스러움이 섞인 카톡을 주고 받았다. 그러고 그 날 이후 연락이 없었다.
후배는 내가 자기를 좋아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이렇게 갑작스러운, 그것도 스무살도 안할 법한 취중고백(더더욱이 내 의지와는 상관없는)을 받으면 부담스러울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정리를 할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 생각하여 연락을 기다리기로 했다. 그와 상관없이 나는 후회와 미안함 때문에 괴로웠다. 그리고 기다리지 않아도 대답은 NO라는 것이 뻔할 것이었기 때문에 더욱 괴로웠다. 그렇기 때문에 고백을 안하려고 했는데, 최악의 방법으로 내가 모든 것을 망쳤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갑자기 안해본 일을 하게 되어 걱정이 되었을 후배에게 또 다른 부담을 안겨준 것 같아 너무 미안했다. 그냥 힘들고 지칠때 옆에서 계속 응원해주고 위로해줘서 가볍게 좋아하는 것이 아닌, 이 사람이 좋아하는 것들을 나도 같이 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후배의 취미와 취향에 대해 알아가고자 했다. 이전 연애들에서 최선을 다 안한건 아니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정도로 누굴 좋아하는 게 처음이라는 생각이 들정로 좋아했었다. 그래서일까, 현실을 생각하니 물리적으로 아픔이 느껴질정도로 가슴이 옥죄어왔고, 식욕이 없어서 식사를 걸렀다. 물조차 거의 안마시고. 계속 생각들이 꼬리를 물며 피어올라 잠을 잘 수 없었다. 어쩌다 지쳐 잠들어도 굉장히 옅은 잠으로 30, 60분이면 다시 깼다. 그렇게 며칠을 보냈다. 정말 고맙게도 친구들이 퇴사로 힘들어하는 나를 위해 모여서 위로해준 덕분에 잠시 웃으며 끼니를 먹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이후로도 우울함은 가시지 않아 잠들지도 못하면서 무기력하게 계속 침대에 누워있고, 식사도 하지 않았다. 이대로면 은둔외톨이가 될 것 같아 나와의 약속 3가지를 정했다. 하나는 무조건 오전 중에 기상하기. 하나는 하루에 한번은 무조건 밖에 나가기. 마지막 하나는 술 마시지 않기. 이 것들을 어떻게든 지켜나가며, 복잡해지는 머리를 비우기 위해 필사적으로 몸을 혹사시켰다. 어제 일기에 쓴, 바보같이 몸을 굴린 이유 대부분이 이 일 때문이었다. 사람이 참 간사한게, 이 것도 익숙해지니 어느 순간 후배의 생각이 점점 또렷이 나고, 그날의 일을 계속 반복하며 후회하고 있었다.
그렇게 힘든 시간을 보내던 중 연휴가 끝난 후 후배의 첫 연락은 개인카톡이 아닌 C직원과 같이 있는 단톡방이었다. 셋이서 술 먹을 때 비용을 정리하는 총무역할을 후배가 하고 있었는데 저번에 발생한 비용에 대해 정산하자는 내용이었다. 나와 관련된 것들을 정리하는 건가 싶어 아쉬움이 들었다가, 괜히 혼자서 망상하는 건 내 나쁜 버릇이라고 생각하며 애써 묻어두었다. 그러고 두번째 연락은 업무 문의 연락이었다. 그 날일에 대한 언급도, 하다못해 연휴를 잘 보냈는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묻는 내용도 없이 업무에 대해서만 물어보더라. 이 역시 아쉬웠지만, 이후 궁금한 것들이 있어도 편하게 물어보라고, 아는 것들은 다 알려주겠다고 약속한 것이 있어서 대답해줬다. 그리고 후배의 태도가 어떤지 확인해보기 위해 슬쩍 일상 이야기들도 했는데, 전과 다른 느낌을 받았었다. 나의 예상대로 되어가는 것 같아 좋지 않음을 느끼며, 그래도 끝마무리는 얼굴보고 해야한다는 생각에 서로 빌린 물건들 돌려줄 것도 있고, 그 날일에 대해 정리를 하기 위해 주말에 만나자도 물어보았다. 후배는 나에게 빌린 자켓은 C직원을 통해 돌려주라고 부탁했고, 주말에도 출근을 해야하고, 개인적인 약속들이 있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다음주에 시간 될 때 알려달라고 하고 연락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두 번의 업무연락이 있었고, 마지막 업무연락은 이틀정도 일을 해달라는 연락이었다. 그 전 업무연락에서 인력의 공백에 대해 고민하던 후배에게 정말정말 급하면 나에게 문의해라. 내가 시간이 된다면 도와주겠다고 말했더니 바로 문의가 들어온 것이다. 내가 한 말을이 있고, 후배도 정말 급했을테니 고민 끝에 어렵게 이야기를 꺼낸 거겠지만(나는 내가 했던 일을 다시 하기 싫다고 퇴사전 술자리에서 후배에게 이야기 했지다.) 개인적으로 이 때 화도 나고 스스로가 너무 비참했다. 그 날 이후 후배는 단 한번도 이 일에 대해 언급을 하거나, 나에 대해 안부를 묻는 연락이 없었다. 일로만 엮인 사이라도 업무 연락을 할 땐 가볍게 안부를 주고 받으며 대화를 시작하는 법이다. 그런데 그런 기계적인 예의조차도 없었다. 내가 좋아하는 마음을 떠나서, 비록 일로 만났지만 친구 관계라고 생각했다. 서로 사적인 고민도 나누고, 좋아하는 취향의 정보에 대해 공유도 하며 힘들 때는 서로 위로도 해주는. 그런데 지금은 그냥 자기 필요할 때만 연락하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아무리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고백을 해서 부담이 된다고 해도, 계속 정리를 하자는 시그널을 보내는 사람에게, 퇴사로 인해 힘들다는 것을 뻔히 아는데도 필요할 때만 연락하다니. 그냥 이용만 당하는 거 같아서 너무 화도 나고, 좋아하는 사람에게, 친구라고 생각했던 사람에게 나는 고작 그 정도 가치밖에 안되었나 싶어 한없이 비참해졌다. 후배가 회피형 성격인 것도 알고, 그냥 거절의 의사를 이렇게 표현하는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봐도 이해가 안되었다.
이 일을 기점으로 어떤 대답인지는 알지만 NO라는 대답을 직접 듣고, 그 날일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를 하려던 내 생각을 바꾸고 정리하기로 했다. 후배에게 빌린 물건과 이제는 처분하기 힘든, 회사에서 숙식하느라 못 준 후배를 위해 준비했던 작은 선물들(나는 원래 주변 사람들에게 작은 선물 주는 것을 즐겨한다.)을 택배로 보내려고 준비했다. 그래도 사과는 전해야 할 거 같아 간단한 편지도 준비했다.(친구는 제발 이기적이고 찌질하게 하지말고 그냥 빌린 것만 주라고 했지만.)
그러던 중 대표님에게 이야기를 하기 위해 서울로 와달라고 부탁을 받아 직접 주기 위해 가져갔다. 미팅 때문에 부재중이라 자리에 놓고 대표님과 저녁식사를 하며 이야기하던 중, 대표님이 불러 후배가 왔다. 정말정말 비참한게, 후배에 대해 실망하고 화가 났는데 막상 얼굴을 보니까 좋다고 헤실헤실해지더라. 물론 겉으로는 무표정이고 속으로만. 아, 이렇게 거부당하고 실망해도, 나는 여전히 저 사람을 좋아하는구나, 정말 병신호구처럼 좋아하는구나 싶었다. 그리고 2일 후 후배에게 편지에 대한 카톡이 왔다. 사과에 대해서 미안해 하지마라라는 답변, 혼자 조용히 있을테니 생각이 많아져 힘들텐데 잘 추스리라는 답변 등... 참 우습게도, 내가 그렇게 기다리던, 내가 계속 연락을 해서 받은 그 날 관련 첫 연락에서도 그 일에 대한 후배의 답변이나 생각은 어떤지 담겨있지 않았다. '아, 나는 그냥 그 정도인 사람이구나. 너는 나에 대해 X도 신경쓰지 않는구나.'라고 다시 느껴져서 너무 슬펐다. 느리긴 하지만 애써 마음을 잘 추스리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 일로 다시 마음이 뒤집어졌다. 회사 복귀 건까지 합해져서 너무 힘들다. 근무 마지막날부터 계쏙 괴로워서 며칠간 제대로 있지 못한 날로 되돌아 간 것 같다.
복귀하면 후배와 같이 협업을 해야한다. 내가 연애 문제에 있어서 능숙하지 못한, 찐따라지만 사회생활 짬밥은 그냥 먹은 게 아니라서 공적으로 잘 대할 자신이 있다. 하지만, 친구로써, 인간 대 인간으로써 내가 진짜 너에게 그 정도 밖에 안되었는지 묻고 싶은 생각이 너무 강하다. 반면에 계속 그 일에 매달려봤자 나만 힘든 것이기 때문에, 그냥 너는 그 정도 수준의 인간이구나 생각하고 남처럼 대하고 묻어 두는 것이 제일이라는 생각도 든다. 이 나이에 중, 고등학생보다 못한 대처로 이렇게 고민하는 내 모습도 우습고.
이 모든 것들이 내가 자제만 했어도 없었을 일이라는 것이 제일 힘들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하고, 그를 통해 배우고, 극복하여 다시 반복하지 않도록 현명하게 살아가야 한다는 말은 너무 잘안다. 하지만 거기에는 그 실수를 감당하고 이겨낼, 마음을 단단하게 만드는 방법과 시간에 대해서는 설명되어 있지 않다. 최근 심리상담을 통해 지금 내 마음이 얼마나 약해졌고 힘든지 알 수 있었다. 항상 이렇게 약하기만 한 난 언제쯤 단단해질 수 있을까. 모든 감정이 무뎌지는 한이 있더라도, 언제쯤 세상 모든 일들을 덤덤하고 초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