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250604

맥주조아 2025. 6. 4. 16:25

이번 주 월요일, 회사 복귀 첫날이었다. 첫날부터 미팅이 두 건이나 잡혀있어서 재택근무가 아닌 서울 사무실로 가서 근무했다. 복귀 전부터 충분히 예상하고 각오를 했지만, 막상 현실로 닥치니 내 생각보다 부정적인 감정들이 컸다.

 

복귀 1주일 전부터 전체 공지 때문에 2개의 회사 단톡방에 초대되어서 미리 알게 되었지만, 이제는 무슨 일을 했다고 하면 대표님이 꼬박꼬박 수고했다는 답변을 한다. 나의 퇴사 때 어떤 변화의 필요를 느껴 시작하게 된 습관인지, 아니면 단순히 주로 프로젝트를 관리하는 두 직원들의 성장을 위한 따뜻한 응원인지 모르겠다.

하반기에 지원사업들과 외주 일이 예정되어서 대표님은 원래 계획했던 새로운 제작부 구성을 완료했다. 7월부터 본격적으로 내가 기존에 있던 팀의 팀장으로 C직원이 배정되고, 그 밑에 짝사랑하던 후배와 신입 직원이 실질적인 프로젝트 관리를 하게 된다. C직원은 10년 가까이 알고 지낸 직장 동료이자 친구이고, 두 직원도 유능함에 더해 의욕적인 태도로 열심히 일을 하고 있었다. 이에 맞춰 대표님은 업무지시를 내리고 있었고 C직원의 진두지휘에 맞춰 각자 담당한 일들을 잘하고 있어 보였다.

 

이 모든 것들을 보는 내 감정은 오직 '왜 나한테는 안 그랬는데.'라는 것 하나뿐이었다. 프로젝트 관리를 하는 직원은 나 포함하여 2명뿐이었기도 했고, 그나마 후배는 갓 이 업계에 들어온 신입이었다. 후배도 배운 대로 열심히 하고, 하나라도 더 도와주려고 노력했지만 이를 더 잘하려면 업무를 알려줄 시간이 필요했다. 그런데 나한테는 그런 물리적인 시간이 허락되지 않았다. 거래처 관리, 프로젝트 일정 관리, 인력 관리, 사방에서 쏟아지는 문의 처리, 각종 이유로 문제가 생기는 실무(작업) 처리, 프로젝트 외적인 회사 업무 처리, 회사 총무적인 업무 처리 등 많은 일들이 다 나에게 집중되었다. 회사에서도 지원 가능한 부분들을 최대한 지원해 줬지만 결국 나는 단 하루도 못 쉬고 잠자는 시간 외엔 오직 일만 했었다. 가끔 '너 고생하는 거 잘 알고 있지만'라고 말은 했지만 그 이후에는 더 나아져야 한다거나 업무 관련 이야기가 뒤따라오곤 했다. 수고했다, 고맙다는 말이 아깝다고 느껴질 정도였는데, 이제 와서 다른 직원들에게는 매번 수고했다는 말을 아끼지 않고 하더라.

그리고 내 퇴사(라고 쓰고 해고라고 읽는)에 맞춰 전체회의에서 대표님은 업무분장을 다시 하며 나한테 집중되던 일들을 전부에게 나눴다. 그전엔 나한테 다 몰아주고서는, 이제야 나눠서 진행한다라...

이 모든 것을 회사의 긍정적인 변화라고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회사는 발전을 계속해나가야 하고, 이를 위해서 문제가 생기면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해야 하는 게 맞다. 하지만 그 변화가 내 해고 이후에 생긴 게 큰 불만으로 다가온 것 같다. 속된 말로 개같이 굴렀는데, 큰 실수를 했다곤 하지만 그 노력을 인정하지도 않고 해고한 게 나에게는 '배신'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감정으로 다가왔다. 내 잘못은 정말 인정하지만, 그게 나에게 화를 내며 퇴직금을 줄 수 없다며 나올 만큼 내 노력과 헌신이 하찮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이제야 변화를 꾀하는 게 나한테 더 큰 서운함으로 다가온 것 같다.

거기에 더해, 신입은 내 해고 전 프리랜서로 같이 일하던 사람인데, 나 때문에 같이 일을 못하겠다는 연락에 대표님이 직접 면담을 하고 내가 문제라고 판단하여 나를 해고하고 내가 하던 일을 하라고 뽑은 사람이다. 내가 하던 일이 나와 성격적으로 전혀 맞지도 않고, 신입이 유능한 면모가 있는 것도 알고, 회사는 제한된 자원 안에서 최고의 효율을 내야 하기 때문에 냉정하고 이성적인 결정이 필요하다는 것도 안다. 그런데 그전에 내가 그 신입과의 일이 생기게끔 환경을 조성하고 방치하고선 나를 내친 게, 내 마지막 근무일 다음날에 인수인계를 해달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신입과 이에 대해 어떠한 의견도 표하지 않은 대표님에게 아쉬움이 컸었다.

그리고 C직원의 지금 인사는 사실 올해 초부터 계획했던 것이라 모두가 알고 있다. 내가 이렇게까지 피폐해지게 만든 프로젝트가 끝날 때 전체회의에서 대표님은 '이번 시즌은 엉망으로 끝났으니, 다음 시즌 때 더 잘해보고자 한다. 그러기 위해 C직원을 팀장으로 배정하려 한다.'라고 했다. 사실 저번 프로젝트 자체가 원청부터 시작해서 문제가 많은 프로젝트라 정량적으로만 보면 완성이지만 정성적으로 보면 엉망이 맞다. 하지만 그동안 모든 상황에 몰려있었고, 매일 대표님에게 '수고했다'라는 보상보다는 혼나거나 불평불만을 듣던 나에겐 나 때문에 엉망이었다, C직원은 더 잘 해낼 것이라고 들렸었다. 그때부터 묘한 질투심, 열등감이 생긴 것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C직원을 필두로 한 새로운 팀을 보며 '내가 있을 때와는 많이 다르구나. 나는 결국 저렇게 못하던 능력부족인 사람이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우발적인 고백 같지도 않은 고백을 한 후 후배와의 관계를 정리하지 못한 나에게, 후배를 대면하는 것은 감정적으로 너무 어려웠다. 전의 일기에도 쓴 것처럼 후배에 대해 점점 화가 나지만 반면에 그런 연락이 오거나, 얼굴을 보면 아직 좋아하는 감정이 남아있기 때문에 두근거리기도 한다. 즉, 내가 후배에 대한 감정정리가 전혀 안되고 있는 상황에서 대면하게 되니 어려울 수밖에.

 

그러다 업무를 끝내고 새로운 팀과 나까지 4명이서 저녁식사를 하게 되었다. 사실 집에 돌아갈까도 싶었는데, 복귀하기로 결정한 이상 이 사람들을 대할 때 나의 감정, 특히 후배에 대한 감정이 어떨지 보고 싶어서 참여했다. 식사자리는 술자리로 이어져서 결국 4차까지 갔다. 계속 바뀌는 내 감정 때문에 나는 적당히 대화에 끼며 주로 침묵하고 있었고, 나머지는 각자 즐겁게 대화를 이어 나갔다. 후배는 사실 신입을 좋게 보지 않았었다. 입사 전 자신이 직간접적으로 보고 들은 것 때문에. 나는 애써 선입견을 갖지 말라 이야기했지만 다행히 둘은 즐겁게 이야기했었다. 비교적 친해진 건지, 후배가 술에 취해서 풀어진 것인지는 모르겠다. 2차 중 모두 화장실 간다고 자리 비울 때 후배가 나에게 '내가 불편하냐'라고 물었다. 나는 '네가 나를 불편하게 느끼는 것 같다. 전에 말한 것처럼 시간 될 때 이야기하며 정리하자.'라고 했다. 이때부터 술렁이던 감정이 폭주하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신입은 2차까지만 참석하고 집으로 돌아갔고 나, C직원, 후배 3명이 3, 4차를 갔다.

나도 술이 꽤 취해서 정확하게 기억은 나지 않지만 3차에서 나에게 '회사 복귀하니까 어떻냐'라는 질문이 들어왔다. 둘은 내 속내를 이야기하는 사이였기 때문에 솔직하게 'X 같다.'라고 말했다. 그리곤 취해서 횡설수설했지만 위에 느낀 감정들을 말했었다. 둘 도 술이 꽤 취했는데, 중간중간 피식피식 웃는 게 정말 기분 나빴었다. 어이가 없어서 웃은 걸까, 아님 중간중간 내 표현들이 웃겨서 웃긴 걸까. 모르겠다. 어쨌든 나도 표현들이 거칠어졌었고, 후배도 술에 취해 '혹시 나와의 일 때문에 더 그런 거냐.'라며 민감하게 반응했었다. '아 난 내가 힘들고 난 후 점점 기분이 태도가 되고 있구나.', '또 저들에게 피해를 주고 있네.'라는 생각들이 들어서 그 자리를 박차고 나가려 했다. 그러다 둘이 붙잡아서 계속 4차까지 있었는데, 이 것도 결과적으로 잘못된 판단이었다.

후배는 만취하면 옆사람에게 스킨십하는 술버릇이 있었다. 자기 말로는 여자든 남자든 안 가리고 그런다고 하는데, 여태껏 회사의 술자리에서 옆사람에게 스킨십 하는 건 딱 1명, C직원에게만 했었다. 후배와 같이 술자리를 한 초반에는 C직원은 유부남이라 당황하며 어떻게든 막고 피했었지만, 점점 술자리가 거듭될수록 C직원도 취하면 후배의 스킨십을 놔두고, 심지어 서로 손을 잡기도 했었다. 지금까지는 애써 모른 체하며 내버려 두고 다음날 둘에게 그런 일이 있었다고 알려주었다. 둘 다 기억을 못 하며 당황해하곤 했는데, 이번 술자리에도 마찬가지였다. 후배는 C직원의 손을 잡고, 어깨에 기대고, 팔짱을 끼기까지 하는데 C직원은 그걸 뿌리치지 않더라. 그걸 계속 보며 기분이 나빠졌다. 아무리 실수로 내가 고백했고, 나에게 마음이 없는 것은 잘 알지만 그래도 내 앞에서 저렇게까지 하다니, 만취했다고는 하지만 진짜 나는 X도 신경 안 쓰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왜 유부남을 상대로 계속 저럴까. C직원을 좋하하는 건가, 아님 C직원의 피지컬이 이상형이라 그런 걸까. C직원은 아내를 사랑하고, 안정적인 커플로 알고 있는데 저걸 다 받아주다 못해 손잡는 것도 그냥 받아주는구나. 만취했다고 하지만 유부남인데 저래도 되는 걸까. 갈수록 기분이 나빠졌고, 술집도 끝날 시간이라 첫차를 타러 나왔다. 둘은 내 뒤를 따라오는 가 싶더니 어느새 보니 안보였다. 나는 요즘 불면증이 심한데, 출근 전날엔 더 심해서 30분 밖에 못 잤었다. 화요일 오후에 심리상담과, 쿠팡근무가 예정되어 있기 때문에 서둘러 집에 가서 조금이라도 자야 했었다. 그래서 알아서 오겠지 하며 먼저 지하철 승강장에 올라갔다. 조금 후, 둘이 승강장으로 올라오는데 후배가 C직원에게 밀착하여 팔짱을 끼고 있었다. 그리고 둘은 나를 보지 못하고 다른 곳으로 갔다. 그 뒷모습을 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정확히는 질투와 분노였다. 끝을 알고 감정 정리를 하고 있다지만 내가 좋아하는 여자가 다른 남자에게 저러는 모습을 보며 질투가 심하게 들었다. 그리고 나도 완벽하고 완전무결한 사람은 아니지만, 도덕적인 면을 많이 보는데 둘의 저런 모습을 보며 이해가 되지 않았다. 둘은 그럴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해 왔는데, 사람 일은 모르는 거라고 둘이 바람을 피우는 걸까, 아님 그냥 취해서 본능이 앞서 실수하는걸까? 아님 후배는 C직원을 좋아하는데 열심히 마음을 감추고 있는 걸까 싶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둘은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이젠 이 관계도 정리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과적으로 이 일로 인해 회사 복귀에 대해 크게 후회했고, 길게 버틸 자신이 없어졌다.

 

나도 너무 잘 안다. 이 모든 것들이 내가 어떻게 결정하고, 어떻게 마음먹기에 달려있다는 것을. 나 스스로를 잘 추슬러 내 안의 중심에 내가 있도록 해야 하는 것이 우선과제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쓸 때 없이 마음 주는 걸 끊어내고 업무적인 관계로, 차갑기보다는 도움도 주며 조금 더 따뜻하게, 긍정적인 관계를 유지하면 된다는 심플한 결론이다. 내가 후배에 대해 어떻게 느끼든, C직원에게 어떤 감정을 품든 그냥 조용히 묻어두고 관계를 재정립하면 된다는 것을 잘 안다.

그런데, 그게 너무 어렵다. 대표님은 10년 가까지 알고 지냈고, 회사에 입사한 후에는 어떻게든 나를 성장시키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해 준 고마운 면이 있었고, C직원은 10년 가까이 관계를 지낸, 몇 안 되는 사회생활 하며 만난 친구이고, 후배는 아직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다. 사실 가족이나 친구나, 내가 불편하면 얼마든지 관계를 끊어 내야 하는 것이 좋다는 것을 알지만, 인간관계가 좁은 나는 하나하나가 소중하다. 이들과의 10년, 1년의 인연을 끊어내는 것이 내 시간이 허무해지는 거 같아 힘들다.

 

모든 것이 다 처음이다. 몇 안 되는 연애경험 중 내가 남에게 고백한 것도 처음이고, 거절도 처음이고, 사내에 이런 관계를 만든 것도 처음이고, 해고도 처음이고, 복귀도 처음이고, 친구들에게 질투를 느끼는 것도 처음이고, 친구들에게 도덕적인 문제로 화가 나는 것도 처음이다. 이 모든 것들이 한 번에 쏟아지니 인간관계에 서투른 나는 어떤 것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무엇보다 계속 감정을 다잡지 못하는 내가 싫다. 우울증과 불안 수치가 높다는 것이 이렇게 무서운 일이라는 걸 처음 알았다. 다음 주 우울증 약 처방을 앞두고 있는데 약을 먹으면 더 나아질까? 난 좀 더 나아지는 내일을 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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