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졸음을 이겨내지 못하고 늦잠을 자는 바람에, 예정보다 1시간 늦은 8시 반에 집에서 출발했다. 여행계획을 세워두긴 했지만, 틀어지면 어떠랴. 지금은 일정을 압박하는 원청도 없고, 마감을 지키지 않는 거래처도 없다. 자유로운 나만의 시간인데. 상사는 회사 퇴근 후 밤에 강원도로 오기로 했기 때문에 혼자 떠나는 상황이라 더 자유로웠다.
4시간 거리 운전은 쉽지 않았다. 중간중간 쉬면서 힘겹게 대관령까지 왔다. 지나가는 표지판에서 '대관령 졸음쉼터에 전망대가 있습니다.'라는 안내를 본 나는 잠도 깰 겸 졸음쉼터로 들어갔다.
재설장비 창고 앞에 지어진 간이 전망대라 크게 기대를 하지 않던 나는, 2층에서는 탁 트인 시야로 멀리 강릉시내와 동해바다를 볼 수 있었다. 푸른 하늘과 생기 넘치는 녹음, 바람 따라 조금씩 나는 바다냄새에 내가 진짜 여행을 왔구나라는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첫 번째 목적지 도착 전 가스 충전을 위해 방문한 동해휴게소에서도 아름다운 망상해변을 감상할 수 있었다. 더 가깝게 바다를 바라보니 한층 더 들떴다.


집에서 출발한지 4시간 반만에 첫 목적지인 장호항에 도착했다. 평일이고, 약간 점심시간이 지난 탓인지 회센터에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한적한 분위기를 좋아하는 나로써는 더할나위 없었다. 현지 분위기를 느끼고 싶어 적당히 아무 식당에 들어가 물회를 주문했다. 물회는 잘 안먹어봐서 어떤게 최고의 맛이 뭔지 모르지만, 새콤매콤한 소스와 탱글한 식감의 회가 어우러진 맛에 감탄하며 먹었다.

맛있게 먹은 후 오늘의 주요 일정인 초곡 용굴 촛대바위길 트레킹을 위해 움직였다. 우선은 장호항에 있는 삼척해상케이블카를 이용하여 용화해변까지 가기로 했다. 매표소에서 성인 1명 편도행으로 6,000원을 결제했다.
장호역에서 용화역까지는 짧은 거리긴 하지만 바닥까지 유리를 배치하여 동해바다를 여러 각도로 볼 수 있었다. 다만 설치한 수고에 비해 거리가 너무 짧은 거 아닐까라는 아쉬움도 있었다.






용화역에서 내린 후 용화 정거장까지 터덜터덜 걸어갔다. 나와 같이 탑승했던 사람들은 저마다 차를 타며 다음 목적지로 가버리고, 걷는 사람은 오직 나 혼자였다. 조용한 시골길을 혼자 걸으니 여유가 느껴지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용화 정거장에서 버스 혹은 택시를 타고 다음 목적지인 초곡항까지 이동할 예정이었는데, 이런 지방의 버스들은 배차간격이 굉장히 길고, 지역에 따라 실시간 정보나 도착 시간을 안내하지 않는 곳들이 있어서 불안했다. 다행히 정거장에 도착 시간이 안내되어 있었고, 곧이어 초곡항으로 향하는 버스가 왔다. 용화에서 초곡까지는 고갯길을 넘어야 하는데, 기사님께서 이니셜D처럼 운전을 하며 빠르게 넘어갔다. 이런 거로는 부산 버스가 굉장히 유명한데, 삼척도 못지 않다. 주 이용객이 근처 사시는 어르신들이실 것 같은데 괜찮을까 걱정도 든다.
10분 쯤 지나서 초곡항 정거장에 도착했다. 드디어 메인인 촛대바위길을 걸을 수 있다는 생각에 발걸음이 점점 빨라졌다. 일이 거의 끝나서 한적한, 조그마한 항구의 풍경을 즐기며 촛대바위길 매표소까지 걸어갔다.

하지만 웬걸!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하필 오늘이 휴무일이었다. 최초의 일정은 화 ~ 목에 다녀올 예정이었는데, 상사가 같이 가게 되면서 월 ~ 수로 조정되었다. 닫힌 매표소를 보고서야 왜 내가 화요일부터 여행을 시작하려 했는지 생각났다.

아쉬움이 굉장히 크게 느껴졌다. 아… 영상으로만 보던 이 곳을 걸을 생각에 너무 신났는데 첫 날부터 펑크라니! 일이나 다른 사람들과 움직일 때는 안 그러는데, 유난히 개인적인 일에서는 항상 덤벙거리는 나를 다시 한번 질책했다.
바로 돌아가기에는 아쉬워서 옆에 있는 등대라도 보자는 생각으로 발걸음을 땠다. 어업이 끝난 작은 항구에서는 돌을 골라내는 공사하는 포크레인 소리만 가득 찼다.








이런 곳에 올 때마다 신기한건, 언제든지 꼭 낚시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테트라포드 위로 여러 낚시대를 펼치고 홀로 낚시하시는 조사님에게 잘 잡히는지 물어보았는데, 오늘은 영 꽝이랬다.
어제의 손 맛을 그리워하는 조사님을 뒤로 하고 초곡항 정거장 근처에 있는 황영조 기념관으로 향한다. 하지만… 황영조 기념관도 월요일이 휴무일이었다. 바다를 보며 겨우 잊었던 실망감이 다시 배가 되어 돌아오는 기분이다. 헛헛한 마음을 달래고자 황영조 기념공원을 한바퀴 돌아본다.


터덜터덜 걸어 내려가 황영조 기념관 정거장까지 간다. 지나가는 레일바이크 여행객들, 초곡항을 방문하러 지나가는 차량들을 보며 2, 30분 정도 기다리니 버스가 왔다.
이니셜D 버스를 타고 장호항 정거장에 도착했다. 정거장이 장호항 마을 입구라 주차장까지 약간의 거리가 있었다. 일정보다 늦어지겠지만 오늘 못 걸은 것을 조금이라도 만회할까 하여 장호해변을 지나 장호역 옆에 있는 둔대암까지 걸어가 구경했다. 장호항이 스노쿨링으로 유명하다고 하더니, 명성대로 물이 엄청 맑았다. 다리 위에서 맑은 바닷물을 보니 몇년 전 TV에서 이 곳이 나왔던 게 기억이 난다.







뛰어들고 싶은 마음을 뒤로 하고 숙소를 향해 출발했다. 전체적으로 원래 계획보다 늦어졌고, 숙소인 탑스텐 호텔은 꽤 멀리 떨어져 있었다. 하지만 기왕 여기까지 온 거, 네비가 안내해주는 길을 무시하고 바닷가에 딱 붙어 있는 길들로 천천히 숙소까지 올라갔다. 시간은 훨씬 더 걸렸지만 여름에 어울리는 플리를 틀고, 창문을 내리고, 바닷바람과 파도 소리를 들으며 지나가는 노을지는 해안도로를 달리니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아니, 제일 행복했을 것이다.
바닷가의 낭만을 즐기느라 탑스텐 호텔에 예정보다 늦게 도착했다. 평소 4만 5천원 이하의 모텔을 선호하던 나답지 않게 이번에는 숙소를 호텔로 잡았다. 2박 3일간 동선의 중간 쯤에 위치한 금진항에 있기도 했고, 대중 온천탕이 이용가능하면서 큰 침대가 두 개나 있는 방치고는 저렴한 가격이 매력적이었다. 주변 모텔들은 접근성이 떨어졌고, 펜션은 호텔과 가격 차이가 크게 안나는 것도 한 몫 했다. 그리고 같이 간 상사는 호텔에 숙박하는 것을 굉장히 선호한다.
체크인을 하고 들어간 방은 좋았다. 바다 뷰가 내가 원하던 방향이 아니라 아쉬웠지만, 깔끔한 방과 푹신한 침대가 너무 좋았다.
방을 둘러볼 시간도 없이 빠르게 샤워하고 다시 나왔다. 상사가 KTX를 타고 정동진역까지 오면 픽업하기로 했는데 시간이 약 40분 정도 밖에 안남았다. 호텔 주변에 혼자 먹기 적당한 식당이 없어서 처음 보인 곳으로 들어가 또 물회를 먹었다. 1인 주문이 가능한 유일한 메뉴였고 정동진에도 특별히 먹을만한 식당이 없었기 때문에 별 수 없었다.
빠르게 식사를 마친 후 부랴부랴 정동진역까지 갔다. 기차 대기실이 해변 바로 앞이라 굉장히 아름답다고 해서 내심 기대했지만, 역시 20시 반에는 어두워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나름 색다른 기분을 내보고자 전에 사두었던 조니워커 블랙라벨을 집에서 챙겨왔었다. 하지만 밥먹으면서 찾아보니 단독으로 먹기에는 조금 아쉽다는 평들이 많았다. 나는 위스키에 대해서 모르기 때문에 충분히 즐길 자신이 없어서 하이볼을 만들 생각으로 편의점에서 토닉워터와 얼음컵을 샀다. 옆에서 보던 상사는 자신도 같이 기분 낸다고 잭다니엘과 콜라, 얼음컵을 집어 들었다. 역시 입으로 들어가는 건 허투로 넘기는 법이 없는 사람다웠다.
그렇게 호텔에 돌아간 우리는 하이볼과 잭콕을 마시며 조용히 첫째 날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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